1. 대개의 사람들이 책을 읽진 않지만,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고, 그걸 하나의 강박처럼 달고 살기도 한다. 이것이 단지 강박에 지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략된 채, 제시되는 구태의연한 수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고독해지고 쓸쓸해진다(어떤 소설에서 그렇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책은 동시에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같이 보면되고, 음악은 같이 들으면 된다. 그렇지만 책만큼은 아니다. 글자가 얼마 없는 동화책은 같이 읽어줄 수 있어도, 하다못해 만화책을 읽더라도 남과 함께 읽으면 왠지 개운하지가 않다.
책을 통해 얻는 배움이 다른 방식보다 '배움의 본질'에 가깝다는 인식도 의심스럽다. 많은 이들이 책을 통해 얻는 배움보다 직접 체험하면서 얻는 배움이 훨씬 값지다는 것을 안다. 독특한 교육철학으로도 유명했던 루소는 '가난한 집 아이와 부잣집 아이 중 하나만을 택해 가르쳐야 한다면 누굴 택하겠냐'는 질문에 '부잣집 아이를 가르치겠다'고 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난한 집 아이는 이미 많은 것을 직접 체험하고 깨우치게 되니 굳이 가르쳐야 한다면 부잣집 아이를 택하겠다'는 것이다. 루소다운 발상이긴 하지만, 이 말에는 책상머리 앞에서 글줄이나 읽으며 얻는 공상적 배움보다 직접적인 체험이 훨씬 값진 배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쉽게 말해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해커스토익>을 보는 것보다, 직접 미국인과 영어로 말해보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너무 앞서 가긴 했지만, 요는 책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유용하지도 않은 데다가 오락거리로써도 미달이며, 지식 습득의 수단으로써도 변변치가 않다는 것.
강유원은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가 책을 읽지 않았으며,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책을 읽었다'고 말한다. 이에 덧붙여 '위장에 탈이난 사자만이 풀을 먹는 것처럼,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현실 세계에서의 모든 가능성이 박탈되어버린 낙오자만이 세계에 대한 복수심으로 문학에 탐닉한다'는 어떤 평론가의 말도 떠오른다.
2. 여하튼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은 말그대로 강박일 뿐이다. 모든 일이란 게 그렇듯, 독서에도 목적이 분명해야 시행착오를 줄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여기서 목적이란 일반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독서를 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다. 이것을 혼동함으로써, 많은 이들은 '책을 읽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뭔가를 이뤄냈다는 뿌듯함에 젖어드는데, 엄청난 착각이다.
헌데 요즘에도 독서의 일반적인 목적을 말하며 '독서를 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이들이 간혹 있다.
어떤 책의 홍보 문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책읽기를 배우지 않으면 밑에서 부려지는 일만 하게 된다!" -이지성(<꿈꾸는 다락방>의 저자라 한다)
성인 대다수의 독서 분야가 이른바 "자기계발서, 성공학, 부자학"에 치중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독서의 일반적인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빡빡한 일상에 쫓겨 매일 같이 "책 좀 읽어야 되는데..."하는 넋두리를 하는 직장인들에게 귀가 솔깃할 만한 선언이다.
이 말은 "위에서 부리는 일을 하고 싶으면 책읽기를 배워라!"라는 뜻과 통한다. 남들 위에 올라서고 싶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호소력이 짙은 선언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상식인 우리 사회에서는 효과적인 협박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책을 읽어야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3. 독서에 일반적인 목적이란 없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책들이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은 쓸데없는 것이다.